Today's my drawing work on the Late YounKi Lee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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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 15:01
<Today's my drawing work on the Late YounKi Lee>
Jean Clair, Director of Picasso Museum in Paris vs The Late YounKi Lee, novelist and translator in Korea
이십여년 전, 파리의 도서관에서 발견했던 두꺼운 책 첫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본다는 것은 눈의 발기이다'
피카소미술관장 장 클레어의 말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대학 강의 시간에 이 말을 미술대학 학생들에게 인용해 주자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더욱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학생들 표정의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이천년 초, 난 한국의 "월간 에세이" 책에 "파리 스케치"란 에세이 칼럼 란에 기고 청탁을 받아 파리의 일상을 에세이와 드로잉들을 송고해 주고 매달 책이 출간되어 파리로 부쳐왔다. 파리에서의 삶에서 느끼는 다정다감함과 창의적인 생각과 거리의 패션과 향수를 담아 매월 한국으로 전송을 했다.
이 고정 컬럼은 잘리지 않고 10여 년을 지속해서 기고하게 되었다.
그때, 이 책에 고정 필진 중의 한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고 이윤기 선생이셨다. 선생님은 한국 번역 문학을 한 단계 끌어 올린 번역가이자, 소설가로 늘 소개가 되었다.
걸출한 모습에 글도 걸쭉했다. 스스로 독학하시어 히랍어와 라틴어를 줄줄 외우고 번역까지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여러 번역서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한 소설가의 블로그에 이윤기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책이 있지요. 나 그거 보고 울었어요. 아하, 이건 종교다 싶더군요. 말하자면 나무와 영저 교감을 나누면서 우리가 삶의 근원으로 돌아가 보는 일, 명상하는 일는 종교의 영역이다. 그리고 나무는 재산이 아니다. 존재다. 실존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이윤기) http://bopstory.tistory.com/2137
고인이 되신 이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남겼다는 말을 후에 들었다.
<정신의 발기>!
위에 적은 피카소미술관장 장 클레어의 말이나 고 이윤기 선생님의 말은 이미 범상치 않은 경지에 이르러 세상을 꿰뚫고 있었음을 오늘에 이르러 깨닫게 된다.
이윤기 선생님과의 조우는 늘 책에서만 이루어졌지만 단 한번도 선생님을 직접 만나뵙지는 못했다.
그분의 에세이는 늘 <이윤기가 건너는 강>이란 화두로 매달 에세이 책의 첫부분에 편집되어 출간이 되었고 파리로 책이 부쳐오면 가장 먼저 읽는 애독란이 되기도 했다.
그분이 출간하신 <이윤기가 건너는 강> 산문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내가 여러 차례 지적해왔거니와 우리는 '다름'과 '틀림'을 혼용하는 기이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사람의 종교는 나와 틀려요 . '다르지' '틀리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과 나는 방향이 틀려요. '다를 뿐' '틀리는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같다'의 반대말이고, '틀리다'는 '옳다'의 반대말이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는 뜻인가? 나와 같지 않은 녀석은 '틀려먹은 녀석'이라는 것인가?
오늘부터라도 바로 쓰면 큰 병 하나 고치는 셈이 된다. <책 속에서> '
...................
대부분의 예술가들 삶이 그러하거니와 번역 일로 먹고 사시던 이 선생님의 삶도 그리 넉넉하시지는 않았으리라.
어느날 한국으로부터 송달된 책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책이 불티나게 팔려 적잖은 돈을 모으실 수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 경기도 변두리 나대지에 조그만 땅을 마련하고 서재를 지을 수 있었다는 글을 읽게 되어 같은 예술인으로 참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그렇듯 커피향 마냥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행복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얼마후, 그 집에 기르던 개의 주검을 맞고 비를 맞아가며 묘에 묻어주고 돌아오며 느끼신 단상의 글을 끝으로 선생님의 타계 소식을 듣게 되었다.
문학계에 큰 별이 지는 것을 또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나의 파리스케치 에세이는 계속 되었지만 더이상 이윤기 선생님의 글을 볼 수는 없었다.
오늘 문득, 선생님의 흔적이 여기저기 내 자취와 함께 배어있기에
시간은 무구히 흘렀지만,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드로잉 작품을 올린다.
돌아오지 못할 영면의 세계에서라도 이 드로잉 작품 선물로 너털웃음으로 맞아주시기를 소망하면서!
April Friday 2014
Paris
www.jungtakyoung.com
Jean Clair, Director of Picasso Museum in Paris vs The Late YounKi Lee, novelist and translator in Korea
이십여년 전, 파리의 도서관에서 발견했던 두꺼운 책 첫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본다는 것은 눈의 발기이다'
피카소미술관장 장 클레어의 말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대학 강의 시간에 이 말을 미술대학 학생들에게 인용해 주자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더욱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학생들 표정의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이천년 초, 난 한국의 "월간 에세이" 책에 "파리 스케치"란 에세이 칼럼 란에 기고 청탁을 받아 파리의 일상을 에세이와 드로잉들을 송고해 주고 매달 책이 출간되어 파리로 부쳐왔다. 파리에서의 삶에서 느끼는 다정다감함과 창의적인 생각과 거리의 패션과 향수를 담아 매월 한국으로 전송을 했다.
이 고정 컬럼은 잘리지 않고 10여 년을 지속해서 기고하게 되었다.
그때, 이 책에 고정 필진 중의 한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고 이윤기 선생이셨다. 선생님은 한국 번역 문학을 한 단계 끌어 올린 번역가이자, 소설가로 늘 소개가 되었다.
걸출한 모습에 글도 걸쭉했다. 스스로 독학하시어 히랍어와 라틴어를 줄줄 외우고 번역까지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여러 번역서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한 소설가의 블로그에 이윤기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책이 있지요. 나 그거 보고 울었어요. 아하, 이건 종교다 싶더군요. 말하자면 나무와 영저 교감을 나누면서 우리가 삶의 근원으로 돌아가 보는 일, 명상하는 일는 종교의 영역이다. 그리고 나무는 재산이 아니다. 존재다. 실존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이윤기) http://bopstory.tistory.com/2137
고인이 되신 이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남겼다는 말을 후에 들었다.
<정신의 발기>!
위에 적은 피카소미술관장 장 클레어의 말이나 고 이윤기 선생님의 말은 이미 범상치 않은 경지에 이르러 세상을 꿰뚫고 있었음을 오늘에 이르러 깨닫게 된다.
이윤기 선생님과의 조우는 늘 책에서만 이루어졌지만 단 한번도 선생님을 직접 만나뵙지는 못했다.
그분의 에세이는 늘 <이윤기가 건너는 강>이란 화두로 매달 에세이 책의 첫부분에 편집되어 출간이 되었고 파리로 책이 부쳐오면 가장 먼저 읽는 애독란이 되기도 했다.
그분이 출간하신 <이윤기가 건너는 강> 산문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내가 여러 차례 지적해왔거니와 우리는 '다름'과 '틀림'을 혼용하는 기이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사람의 종교는 나와 틀려요 . '다르지' '틀리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과 나는 방향이 틀려요. '다를 뿐' '틀리는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같다'의 반대말이고, '틀리다'는 '옳다'의 반대말이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는 뜻인가? 나와 같지 않은 녀석은 '틀려먹은 녀석'이라는 것인가?
오늘부터라도 바로 쓰면 큰 병 하나 고치는 셈이 된다. <책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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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예술가들 삶이 그러하거니와 번역 일로 먹고 사시던 이 선생님의 삶도 그리 넉넉하시지는 않았으리라.
어느날 한국으로부터 송달된 책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책이 불티나게 팔려 적잖은 돈을 모으실 수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 경기도 변두리 나대지에 조그만 땅을 마련하고 서재를 지을 수 있었다는 글을 읽게 되어 같은 예술인으로 참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그렇듯 커피향 마냥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행복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얼마후, 그 집에 기르던 개의 주검을 맞고 비를 맞아가며 묘에 묻어주고 돌아오며 느끼신 단상의 글을 끝으로 선생님의 타계 소식을 듣게 되었다.
문학계에 큰 별이 지는 것을 또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나의 파리스케치 에세이는 계속 되었지만 더이상 이윤기 선생님의 글을 볼 수는 없었다.
오늘 문득, 선생님의 흔적이 여기저기 내 자취와 함께 배어있기에
시간은 무구히 흘렀지만,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드로잉 작품을 올린다.
돌아오지 못할 영면의 세계에서라도 이 드로잉 작품 선물로 너털웃음으로 맞아주시기를 소망하면서!
April Friday 2014
Paris
www.jungtakyo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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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故 이윤기[ 李潤基 ] 1947.05.03~2010.08.27
1977.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하얀 헬리콥터」로 등단. 1947년 경북 군위에서 출생하였다.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나 창작보다는 번역 작업에 몰두하여 20년 간 이백여 권의 역서를 출간하였다.
비록 역서라고는 하지만 만만치 않은 작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우리 번역문학의 한 차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의 번역은 새로운 창작에 버금갈 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1991~1996년에 미국 미시간주립대 종교학 연구원으로, 1997년에 같은 대학 비교문화인류학 연구원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1997년 이후에는 주로 창작에 주력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창작집 『하얀 헬리콥터』(1988), 『외길보기 두길보기』(1991), 『나비 넥타이』(1998), 장편소설 『하늘의 문(전3권)』(1994), 『햇빛과 달빛』(1996), 『사랑의 종자』(1995), 『나무가 기도하는 집』(1999), 산문집 『어른의 학교』(1999), 『무지개와 프리즘』(1998)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이상 움베르토 에코), 『샤머니즘』(엘리아데), 『변신 이야기』(오비디우스), 『인간과 상징』(융) 등이 있다. 그는 번역작업을 통해 얻은 풍부한 교양과 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기반으로 우리 문학에서 보기 드물게 깊이 있는 상징과 은유를 소설에 도입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번역작업에 오래 종사하면서 언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깊이 천착해 온 작가답게 그의 문체는 가장 우리말다운 표현을 잘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시에 보편적인 상징과 은유체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서술구조를 지닌 이야기를 풀어내는 만만치 않은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우리 소설가들이 이야기의 서술에는 많은 공을 들이고 있지만 인물들의 대화를 재현하고 생동감 있게 만드는 데 다소 부족하다는 일반적인 경향을 감안할 때, 그의 작품들은 늘 살아 있는 인물들이 직접 대화에 참여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대화’로 구성되어 무척 신선한 인상을 준다. 그러면서도 대화의 구조가 간명하면서도 깊이 있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을 연출하는 힘은 오랜 습작기와 다수의 외국 문학 작품의 번역을 통해 얻은 작가수업의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